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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서부보훈지청 우리고장 독립유공자 알리기 여덟번째 : 한훈 선생

  • 등록 2016.04.14 14:59:00


[홍성=충남도민일보]한훈 선생은 1889년 3월 27일에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났다.

1906년에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민종식 의병진에 가담하여 홍주성 공방전에서 활약했고, 그 후 부여 · 공주 등지에서 계속 활동하다 악질 친일군수인 직산 군수를 사살하고 만주로 망명했다.

경술국치 이후에 국내에서 항쟁할 목적으로 다시 귀국했고, 1913년 12월에는 채기중 · 유창순 · 유장열 · 장두환 등과 함께 풍기에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을 조직하고 전라도 오성에 있는 일본 헌병 분대를 습격하여 수 명의 일본군을 사살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다 동지들이 체포되자 재차 만주로 망명했다.

1919년 5월에는 만주 길림성에서 김동순 등과 함께 조선독립군정서에 가입했고, 1920년 초에는 군자금 모집을 위해 재차 귀국하여 박문용 등과 함께 서울에서 독립운동 방략을 상의했다.

그리고 동년 2월 말 경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김철 · 이동휘 · 이동녕 · 이시영 등과 회견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조선독립군사령부를 조직하는 것을 승인받고, 동년 3월에 서울로 돌아와 박문용과 함께 그 준비에 착수했다.

그 후 동년 8월에 재등실(齋藤實) 총독 등 일본 고관들을 암살하기 위해 결사대를 조직하고 김상옥 등의 암살단과 합류하여 계획을 추진하던 중 체포되어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의병활동이 발각되어 재차 2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9년 6개월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옥고에 시달리다 형집행정지처분으로 출옥했다.

1945년에 광복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6·25 동란 중에 북한군에게 납치되어 1950년 9월 10일에 피살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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