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친왕 영친왕비 왜곡 정정해야

김민수 | 기사입력 2011/05/16 [15:23]

영친왕 영친왕비 왜곡 정정해야

김민수 | 입력 : 2011/05/16 [15:23]
영친왕(英親王)은 대한제국 1대 고조 광무제의 일곱째 아들이고 마지막 황태제 의친왕,완친왕의 이복동생이며, 어머니는 명성황후의 시위상궁인 엄상궁이고 1895년 엄상궁에게 제보받은 일본 정부가 건청궁에서 명성황후를 발가벗겨 신체적 비밀을 확인 후 명성황후를 능욕,살해하자 엄상궁은 고조 광무제를 시위하여 러시아공사관으로 이어 후 대한제국 황궁 경운궁을 건축하고 이어하여 1897년 영친왕을 낳았고 1900년(광무 4) 8월 영친왕(英親王)에 책봉되었다.
 
 1907년 영친왕비(英親王妃) 민갑완(閔甲完)은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되고 택일하여 가례를 올릴 예정이었으나 이토 히로부미 일제 통감이 고조 광무제를 강제 퇴위(고조 광무제의 황태자 순종 융희제의 대리청정 명령을 일제가 황제 양위로 둔갑)시키고 대한제국 강제 병합의 볼모로 영친왕을 일본에 데려갔고 영친왕은 일제에 저항하지 않았으며 영친왕비(英親王妃) 민갑완(閔甲完)은 영친왕의 귀국과 혼례만을 기다리며 책을 벗삼아 지냈다.

1895년 을미독립운동,1905년 을사독립운동,1907년 정미독립운동,대한의군 안중근 의거,대한광복회,신한혁명단,대동단,고조 광무제의 독립 청원 등 대한제국의 독립운동을 막기 위해 일제 총독부가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를 독살했다.
 
전제군주제의 대한제국은 1919년 1월 고조 광무제의 붕어로 9월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으로 전환되었으며 이에 일제 총독부는 무력을 동원한 대한제국 불법 침략이 아닌 합병의 정당화를 정치선전하기 위해 1920년 영친왕을 일본 왕족 마사코와 정략혼인시켜 일본 왕실에 불법 편입시켰고 영친왕은 일제에 저항하지 않고 호의호식하며 일본군 중장을 역임하였으므로 귀국할 수 없었다.
 
 문화재청은 민갑완(閔甲完)을 영친왕비(英親王妃)로 추봉(追封)하고 일본 왕족 마사코는 대한제국 황족이 아니므로 일본으로 송환하고 영친왕릉에 영친왕비(英親王妃) 민갑완(閔甲完)을 합장(合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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